중학교 시절 한창 컴퓨터에 빠져 있던 내게 컴퓨터잡지는 GUI 기반 운영체제는 윈도우 3.1과 윈도우 95만 있는게 아니라 OS/2와 리눅스, 그리고 애플에서 나온 매킨토시가 있다는 사실을 알려 주었다. 그러나 MS윈도우 이외의 운영체제가 실제로 어떻게 운영되는지는 볼 기회가 좀처럼 없었다. 대부분의 우리나라 유저들이 그렇듯 오직 ‘컴퓨터=MS윈도우’ 라는 공식 속에 살아왔다.

그러다 대학을 졸업한 후 우연히 맥북의 존재를 알게 되었고 매킨토시 운영체제를 직접 겪어 볼 수도 있으면서 인텔 CPU를 장착하여 부트캠프를 통해 윈도우XP도 설치 가능하다는 사실을 알았다. 가격 또한 기존에 알던 매킨토시 컴퓨터는 비싸다라는 통념을 뒤엎고 적당한 수준이라 주저없이 2007년 6월 맥북을 구입하였다. 맥북을 통해 OSX 운영체제를 어느 정도 이해하게 되었고 애플이라는 회사에 점점 빠져 들면서 스티브 잡스라는 인물에도 매력을 느끼게 되었다. 결국 지름신을 막지 못하고 이후에도 아이맥 24인치, 아이팟 터치 2세대 8기가를 구입하여 300만원이 넘는 돈을 애플에 갖다 바쳤다.

스티브 잡스는 1977년 회사를 세우고 이런저런 일을 겪었지만 내가 스티브 잡스에 대해 구체적으로 흥미를 갖게 된 것은 최근의 아이팟과 아이폰 등의 신제품 발표 키노트 프레젠테이션과 스탠포드 대학 졸업식 연설을 통해서였다. 최근의 그에 대한 모습에서 흥미와 매력을 느껴 아주 열정적이고 재치와 유머가 넘치며 자신감과 확신에 가득차 있는 정말 멋진 사람이라고 판단을 했다. 그러나 인터넷 여기저기서 얻게 된 정보와 이 책 ‘icon 스티브 잡스’를 통해서 스티브 잡스의 여러 면을 알게 되면서 그가 키노트 프레젠테이션에서 보여 주는 모습이 다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젊은 시절 친구와 함께 자신이 추구하던 수행을 위해 인도여행을 강행하고 애플을 세우면서 막무가내와 떼쓰기 전략으로 투자를 유치한 점, 직원들에게 실현 불가능한 목표를 정해 주고 독려하면서 결국은 어찌어찌 계획대로 일을 진행시키는 점, 자신의 딸을 모른 체했던 시절, 회사 내 여러 인간관계 속에서 독선과 이기주의, 배신으로 인해 불화를 초래하고, 시장에 대한 현실적인 수요 판단 보다는 자신의 느낌과 생각대로 제품을 만들어서 결국은 실패를 맛본 점, 그러한 와중에서도 결국은 성공 신화를 이룩한 점 등 순탄하지만은 않은 스티브 잡스의 인생 이야기를 진솔하게 알 수 있었다.

애플이 있을 수 있었던 시발점은 스티브 잡스와 워즈니악이었다. 워즈니악이 탁월한 엔지니어로서의 자질로 애플을 일으켰다면 스티브 잡스는 경영자의 역할에 가까웠다. 애플에서 쫓겨난 후 픽사를 인수하면서도 스티브 잡스는 픽사의 중심 인물이기 보다는 주변 인물에 가까웠고 픽사의 성공을 이끈 것은 래스터의 자질과 능력의 영향이 컸다. 다시 애플에 복귀해서는 스티브 잡스가 진두 지휘를 하지만 결국 디자이너 조나단 이브 등 다른 여러 사람의 아이디어가 큰 역할을 했다. 즉 잡스는 자신이 스스로 아이디어를 내어 회사를 이끌었다기 보다는 큰 틀에서 방향을 제시하고 목표를 향해 회사가 나아가도록 만드는 추진력이 뛰어났다고 할 수 있다.

잡스는 마이크로경영자였지만 이것 저것을 이성에 따라 재어 보고 생각하고 분석하기 보다는 직관에 따라 직선적이고 단순하게 회사를 운영했다고 볼 수 있다. 좀 과장된 표현이기는 하지만 감성 경영이라는 말을 붙여도 되지 않을까 싶다. 그 와중에 큰 성공을 거둘 때도 있었지만 큰 실패를 맛볼 때도 있었고 인간관계와 계약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였다. 애플이라는 회사 자체가 롤러코스터를 타듯 오름과 내림을 반복하여 일관되게 안정을 이뤄온 마이크로소프트와 많이 비교가 된다. 어떻게 생각하면 잡스가 좀 더 신중하게 행동하고 상황을 잘 파악하여 행동했다면 지금의 마이크로소프트의 위치 이상으로 애플이 올라서지 않았을까 생각도 해보지만 지금과 같은 매력적인 애플의 모습은 만들어지지 않았을 것 같다.

‘디자인이란 어떻게 보이는가의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작동하는가의 문제이다’라 고 생각한 스티브 잡스의 디자인 감각은 애플의 제품에 전반적으로 나타난다. 다만 매끈하고 부드럽게 잘 작동하는 기계와 소프트웨어 자체는 좋지만 폐쇄적인 하드웨어 정책과 비싼 가격 문제는 애플의 더 큰 성장을 막는 장벽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 폐쇄성으로 인해 좀 더 안정적인 컴퓨터를 만들었고 아이폰 같은 특화된 제품을 만들어 큰 성공을 거두긴 했지만 애플의 제품에 사람들이 맞추는 방식이 아닌 사람들의 방식에 애플이 맞추어 가는 모습도 필요할 것 같다. 아이튠스나 아이포토가 뛰어난 기능을 제공하기는 하지만 좀 포용력이 있다면 훨씬 더 좋은 프로그램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너무나도 좋은 레오파드의 멋진 기능들. 하지만 이 레오파드에 휴대폰 같은 다른 여러 주변기기 회사들이 기기를 바로 연결하여 사용할 수 있게 호환성 작업을 지원했더라면, 좀 더 많은  소프트웨어 회사들이 맥용 응용프로그램을 많이 만들었다면 훨씬 더 발전하지 않았을까? 그렇게만 된다면 정말 MS윈도우와 맥OSX을 비교했을 때 나는 주저없이 맥의 손을 들어줄 것이다.

직원들이 마주치기 꺼려하는 인물이지만 핵심 인재들은 언제나 잡스와 함께 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그의 성공과 열정과 비전을 존경하고 배우고자 한다. 큰 꿈이 있고 그것을 적극적으로 실천할 줄 아는 인물. 결단력과 철학이 있는 인물. 아마 내가 갖지 못한 점들을 많이 가지고 있으면서 그것을 실천한 인물이라서 더욱 매력이 느껴지는 것 같다. 현실에 안주하고 있는 내 모습을 탈피하여 좀 더 적극적으로 실천해야겠다.

어머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하루 종일 밭에서 죽어라 힘들게 일해도

어머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찬밥 한 덩이로 대충 부뚜막에 앉아 점심을 때워도

어머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한겨울 냇물에서 맨손으로 빨래를 방망이질해도

어머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배부르다, 생각 없다, 식구들 다 먹이고 굶어도

어머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발 뒤꿈치 다 헤져 이불이 소리를 내도

어머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손톱이 깎을 수조차 없이 닳고 문드러져도

어머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아버지가 화내고 자식들이 속썩여도 끄떡없는

어머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외할머니 보고 싶다.
외할머니 보고 싶다, 그것이 그냥 넋두리인 줄만

한밤중 자다 깨어
방구석에서 한없이 소리 죽여 울던 어머니를 본 후론
아!
어머니는 그러면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 심순덕 – 어머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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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득 이 시가 생각이 나서 옮겨 봅니다. 여기 저기서 검색을 해보니 엄연히 지은이가 있는데 작자 미상이라 적어 놓은 곳도 있고, ‘어머니는’을 ‘엄마는’으로 바꿔놓은 곳, ‘알았습니다.’를 ‘알았다’로 바꿔놓은 곳 등 다양한 모습이었습니다.

 올 3월에 어머니께서 돌아가시고 참 많이 울었습니다. 다시 한 번 이 시를 읽어 보니 그 의미가 정말 가슴에 와닿습니다. 제 나이가 아직 20대 후반이지만 어릴 때부터 시골에서 부모님께서 농사짓는 모습을 보고 커왔기 때문에 시 구절 하나하나가 제 가슴에 와서 꽂힙니다. 새벽부터 저녁 늦게까지 일하고, 밥은 대충 챙겨 드시고, 손발이 다 닳아서 손톱을 깎을 수 없을 정도까지 부었습니다. 어머니께서 아직 50세 밖에 안되셨는데 말입니다.

 저는 어머니가 그러면 안된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어느 정도 철이 든 뒤에는 매번 어머니께 이제 살만한데 왜 그렇게 모질게 일하느냐고, 이제 좀 편히 쉬면서 즐기면서 사시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래도 어머니는 예전에 못살고 고생하던 시절을 떠올리며 항상 미래를 대비해야 된다면서 일을 하곤 하셨습니다. 병원에 입원하시기 전까지도 그랬고 입원해 있는 동안에도 일 걱정이었습니다.

 그러나 너무나 갑자기 병세가 심해지시고는 마지막 인사도 제대로 하지 못한채 제 곁을 떠나셨습니다. 고생의 결과가 이렇게 나쁘게 될까봐 항상 저는 안절부절 못했는데, 기어이 이런 결과가 나오니 어머니가 미우면서도 너무나 후회가 되고 가슴이 아픕니다. 6개월이 다 되어가지만 아직도 믿기지 않습니다.

 그만큼 어머니의 존재가 저희 집에서는 절대적이었습니다. 가족 4명이서 꽤 화목하게 지냈지요. 하지만 어머니가 떠나심으로 인해서 아버지, 동생, 그리고 저는 아직도 너무나 많이 힘들어 하고 있습니다. 아무렇지 않은 듯 행동은 하지만 그 충격이 너무나 큽니다. 살아갈 목표를 상실한 느낌입니다. 물론 더 힘든 상황에 있는 분들 생각하면서 이겨내려 하지만 쉬운게 아닙니다.

 어머니 살아계실 적에 한 번이라도 더 찾아 뵙고, 더 자주 전화하고, 더 맛있는 것도 사드리고, 좋은 옷도 사드리고, 좋은 곳에 여행도 보내 드리고 했어야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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