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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과 스타크래프트의 재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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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바둑의 재미에 푹 빠지려고 한다. 바둑은 동양의 놀이 또는 철학으로서 흑과 백의 오묘한 이치를 통해 세상사와 연관되어 언급되기도 한다. 조훈현, 이창호, 이세돌 등 프로바둑 기사들의 이름도 자주 들어봤고 TV프로에 한 번씩 지나가면서 보기도 했다. 장인어른과 사위가 바둑 한 판 두는 장면 등 바둑은 일상생활과도 밀접하게 관련된 놀이 중 하나다.

그러나 우연히 접하게 된 바둑판과 바둑알을 놓고 친구들과 바둑을 한 번 해보려고 시도했을 때, 바둑은 나의 흥미를 무참히도 짓밟아 버렸다. 당시 ‘바둑은 둘러싸면 먹는다’는 사실만 알고 바둑을 시도했던 나에게는 단순하게 둘러싼다는 것이 아무 의미없이 느껴졌다. 그 원리와 이치를 모르고 무모하게 시도하는 게임은 재미도 흥미도 없었고, 오히려 인내심만 줄어들게 만드는 지루한 것이었다. 바둑에 미련을 버리고 친구와 흑과 백의 줄 연속잇기 놀이로 빠지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그 뒤 한 참 알까기 유행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최근에 갑자기 집사람이 바둑을 같이 배워 보자고 제안을 했다. 장기판도 그려진 바둑판과 장기알, 바둑알을 사게 되었던 것이다. 집사람이 그런 제안을 하게 된 배경은 결혼 후에도 컴퓨터에만 빠져 사는 나에게 불만을 표시하다가, 둘이서 같이 해볼 수 있는 뭔가를 찾던 중 생각이 떠오른 것이었다. 처음에는 장기만 하다가 어느덧 흥미를 잃고 바둑으로 방향 선회를 한 것이다.

예전처럼 아무 것도 모르고 둘이서 바둑을 두었는데, 역시나~! 지루했다. ㅎㅎ 결국 우리는 바둑을 배워보자는 데 동의했고, 동영상 강의까지 보게 되었다. 하나씩 바둑의 기초를 배우는 과정에서 보니 단순한 듯 하면서도 몇 수 앞을 내다봐야 하고, 전체적으로 또는 부분적으로 생각을 해야 하는 등 쉽지가 않았다. 게임 후 결과를 계산하는 방법도 여러 가지이고, 복잡했다. 그러나 의욕을 가지고 배우다 보니, 예전에는 알 수 없었던 재미가 하나씩 생겨나게 되었다. 멋도 모르고 두던 바둑알들이 조금씩 의미를 더해갔다. 단순하게 상대방 알을 둘러 싸려고 하기 보다는 앞 길을 내다보고 수를 썼다.

바 둑을 하면서 느낀 것은 수 하나가 엄청 중요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큰 집을 짓는데 있어서 수 하나를 잘못 두면 그 큰 집이 무용지물이 되면서 완전히 허물어지기도 하고, 상대방의 집이 완성되는 것을 수 하나로 완벽하게 방어하기도 했다. 그래서 바둑 둘 때는 웬만하면 물리는 것은 있을 수 없다는 말도 강의에서 들었다.

이렇게 바둑을 두면서 젊은이들이 많이 즐기는 스타크래프트는 과연 어떤 재미를 가졌길래 아직까지 유지되는가를 생각하게 되었다. 스타크래프트가 나온 것이 1998년이었던 걸로 기억된다. 당시에는 친구들끼리 PC방에 가서 무한맵에서 2:2, 3:3팀플을 했던 기억이 난다. 그러다가 이기석, 기욤패트리, 강도경 등 프로게이머가 생기게 되고, 임요환, 강민, 박정석, 이윤열, 최연성에서 최근의 마재윤, 김택용, 오영종, 한동욱까지 스타리그가 형성되기에 이르렀다.

게임이란 것의 본질은 경쟁에 있다. 상대방을 이기는 것에 목적을 두고 진행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지켜보는 관중도 감정이입이 되어 게이머의 입장이 되고 그 속에서 게임의 룰을 따르면 재미를 느끼는 것이다. 그리고 크게 보면 대부분의 게임은 가위, 바위, 보 류가 많다. 이것은 저것에 이기고 저것은 그것에 이기고, 그것은 이것에 이긴다. 스타크래프트에서도 종족별 유닛은 상성이 있다. 아칸은 뮤탈, 저글링에 강하지만 히드라에게는 약하다. 드라군은 히드라와 싸움이 되지만 저글링에게는 약하다. 탱크는 드라군에게 강하지만 발업 질럿에게는 약하다. 또한 앞마당 멀티를 빨리 돌리느냐 늦게 돌리느냐에 따라서도 전략이 달라진다. 상대방은 멀티를 빨리 돌렸는데, 나는 안돌린 상태로 무난하게 중반전 싸움을 한다면 상대방을 이길 수 없다. 그러나 멀티를 빨리 돌리면 초반에 방어가 힘들고 공격을 못간다는 단점이 있다. 이러한 상성이 물고 물리는게 엇비슷한 수준이 유지되어야 게임이 재미가 있는 것이다.

야구에서도 투수의 공은 크게 직구, 변화구로 나뉜다. 직구는 빠르고 변화구는 느리다. 그리고 타자들이 노리는 코스에 따라서도 다르다. 타자는 직구를 노렸는데 변화구가 오면 타이밍 맞추기고 어렵고, 몸쪽 공을 노렸는데 바깥쪽 공이 오면 마찬가지고 치기가 어렵다.

바둑은 가위, 바위, 보 류의 게임은 아닌 것 같다. 바둑판 위에서 자기 집을 많이 지으면서 상대방은 집을 못짓게 방해를 해야된다. 그리고 어느정도 상대방 바둑알을 둘러 쌌을 때 단순히 옆에 붙여서 바둑알을 놓기 보다는 미리 길목에 그물을 치고 함정을 파야 승리를 할 수 있다. 너무 크게 둘러싸서 먹으려 할 경우에는 중간을 둘러싸던 바둑알들이 상대방에게 먹힐 위험이 있다. 먹혀 버리고 나면 크게 세웠던 계획이 물거품이 되기 때문에 잘 생각해야 한다. 그러나 너무 세부적인 하나에만 집착하다 보면 전체 승부에서 밀릴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이치를 잘 터득하고 파악하여 실행에 옮겨야 되는 것이다.

아직은 완전 초짜지만 제대로 한 번 배워서 바둑을 아주 재미있고 스릴있게 즐길 수 있도록 했으면 한다. 바둑, 바둑, 바둑…. 덤으로 스타크래프트도 좀 더 실력을 올려야 겠다.

동창 친목회의 의미와 목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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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를 하나씩 먹고,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을 다니고 사회생활을 하면서 친구들이 하나둘씩 결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첫테이프는 제가 끊었죠.^^; 암튼 제가 겪어보니 역시 결혼식에서 친구들의 방문이 무척이나 고맙고 소중했습니다. 또한 가입되어 있는 동창 친목회에서 돈을 얼마 정도 지원받고 하는 것도 단지 돈뿐만 아니라 정신적으로 의지도 되고 힘이 되는 것 같았습니다. 초등학교 남자 친구들, 고등학교 남자 친구들끼리 해서 계모임을 결성했고, 회비도 납부하고 정기 모임도 갖기로 했습니다.

문제 는 대학 동창들 모임인데, 졸업과 동시에 동창회 결성에 뜻을 모아 만들긴 만들었는데, 참여율이 말이 아닙니다. 대학 때는 패가 대충 두 분류로 나뉘어 지지 않습니까? 과모임에 자발적이고 헌신적으로 나와서 즐기는 파와 자기 할 일에 충실하게 시간을 보내면서 친한 몇몇과만 소통을 하는 파로 말입니다.

이번 동창 모임도 과에 자발적이고 헌신적인 몇몇이 의견을 모아 결성을 했습니다. 회장과 총무를 정하고 정기모임을 갖고 회칙도 정했죠. 그런데 문제는 대학때도 잘 나오던 몇몇 친구들만 꾸준히 회비를 내고 정기모임에 참석을 하고 나머지는 그나마 나오던 애들도 지역이 떨어져 있다 보니 참여를 거의 하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모임을 주도하던 주요 친구들은 이렇게 주장을 합니다.
“과학번 동기모임이니깐 회원을 늘려야 한다. 중간 가입조건도 완화시켜주고 모임이나 경조사시에는 회원가입된 사람뿐만 아니라 비회원 친구들에게도 연락을 돌리자.”

하지만, 문제는 그렇게 하더라도 나머지 이 모임에 관심이 없는 친구들은 별 신경을 안쓴다는 것이죠.
나 오지 않는 친구들을 억지로 가입해라 해서 과연 그 친구들이 진실되게 참여를 할까요? 중요한건 마음인 것  같습니다. 그 모임이 나에게 소중하게 느껴지도록 마음이 가게 해야 되는 거죠. 그것은 그냥 친구들이 좋아서 일 수도 있고, 그 모임이 나에게 금전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도움이 되어서 일 수도 있고, 그 모임이 자기 생각과 같은 방향의 행동을 실천하고 있어서 일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동기유발이 안 될 시에는 백날 얘기를 해봐야 안된다는 말이죠.

그래서 제 생각에는 이 동창 모임을 일단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들끼리라도 결속력있게 모여서, 즐겁게 놀기도 하고, 좋은 활동도 하고 하면서 말 그대로 친목을 도모하는 단결되고 단합되고 체계적인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굳이 회원을 모으는데 중점을 두기 보다는 친목회의 내실을 다지다 보면 회원수는 자연스럽게 늘어날 거라고 봅니다. 회원수가 늘어나지 않더라도 상관없습니다. 어차피 마음 맞는 사람들과의 친목을 도모하자는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아직 어린 나이에 동창회라는 것을 만들어서 유지해 나갈라니 진통이 많습니다. 혹시 이 글을 보시는 분이 계시다면 노하우를 좀 전수시켜 주십시오. 동창회의 번영을 위한 방안들 말입니다.^^

주례사 – 평생 가슴 속에서 되새기며 실천해 나가야 할 덕목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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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2월 25일 12시 제가 결혼을 했습니다. 벌써 한달이 지났습니다. 4년 가량 연애를 하고 이제는 부부로 어엿하게 아기자기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저 희 결혼식에서는 스님께서 주례를 해주셨습니다. 집사람이 예전에 친구들과 여행 중에 알게된 스님이신데, 그 이후에도 인연이 닿아 이렇게 결혼식 주례까지 해 주시게 되었죠. 주변에서는 스님이 무슨 주례를 하느냐며 반의심을 하셨지만, 저는 주례를 부탁드리러 가서 한 번 뵙고는 정말 저분께 부탁드려야 겠다고, 이후에도 인연을 이어가고 싶은 멋진 분이라고 느끼게 되었습니다. 따뜻한 성품과 차분한 어투, 진실된 행동, 열린 마음. 아직 많이 뵙지는 못했지만 인생을 사는데 있어 많은 깨달음을 주실 분을 만난 것 같네요.
결혼식 당일날과 그 이후에 너무 정신이 없어서 인사도 제대로 드리지 못했습니다. 여유가 생기면 꼭 찾아뵙겠습니다. 그리고 몸이 불편한 와중에서도 먼 길 와 주시고 저희를 위해 선물까지 주신 점 잊지 않고 있겠습니다. 건강하시고 다음에 꼭 찾아뵙겠습니다.

아래는 금강스님께서 저희 결혼식의 주례사로 해 주신 말씀들입니다. 결혼식 후 한달이 지나고 지금 다시 읽어보니 참 부끄럽고 반성해야 될 점이 많습니다. 하나씩 실천해 나가도록 노력해야죠~ 손수 ‘시’까지 지으셔서 낭송해 주셨는데, 저작권 침해(?)인 것 같아 여기는 올리지 않습니다.^^;
시간 나시는 분들은 전라남도 해남군 땅끝마을 근처에 있는 미황사에 한 번 들러 보시길. 주변 경치도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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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인연 – 인생의 참된 가치는 만남에 있습니다.

오늘 이 시간, 선남자 OOO과 선 여인 OOO은 여러 생의 소중한 인연이 다시
만나 부부가 되었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만남은 결코 우연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옷 깃 한 번 스쳐도 삼천생의 인연이라 했으니 부부의 인연은 그 어떤 인연보다도 귀하고 귀한 것입니다. 인생의 전 과정은 만남, 그 자체입니다. 서로의 마음과 가치, 서로의 이상과 노력이 개성과 조화를 이루어 만날 때, 두 사람은 진정한 영혼의 동반자로 한 세상을 열어갈 것입니다.

2. 사랑 – 사랑은 서로를 비추는 거울입니다.

사랑은 참마음으로 서로를 비추는 거울입니다. 사랑은 서로를 감동시키는 종소리입니다. 사랑에 있어서 가장 소중한 것은 언제 어느 상황에서도 참마음을 잃지 않는 것입니다. 닥터 지바고라는 소설에서 혼란한 이념의 갈등 속에 주인공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나는 사람을 사랑하고 자연의 아름다움을 사랑하는 마음을 부정하는 그 어떤 이념과 제도에 결코 동의할 수 없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도 ‘마음은 모든 인간사의 근본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사랑의 길은 멀리 있지 않습니다. 사랑의 길은 단순 소박한 마음에 있습니다. 진실을 사랑하고 선을 사랑하고 아름다움을 사랑하는 그 마음을 소중하게 가꾸는 일이 바로 사랑입니다.

3. 노동 – 일 속에 진정한 사랑과 아름다움이 있습니다.

사 랑의 가치를 구체적으로 구현하는 일은 바로 노동에 있습니다. 인생과 사랑은 어설픈 관념의 유희도 아니며, 허영으로 치장한 낭만이 아닙니다. 밥을 먹고 돈 버는 일에 엄숙해야 합니다. 흔히들 정신은 고귀한 것이며 물질은 하천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 말은 틀린 말입니다. 건강한 정신에서 생산되는 모든 밥과 돈은 사람을 행복하게 합니다. 그래서 성인들은 밥 먹고 잠자고 일하는 모든 일상의 생활이 진리 그 자체이며 행복이라고 했습니다. 게으른 손은 추하고 일하는 손은 아름답습니다. 우리는 일을 통해서 행복을 느껴야 합니다. 일을 단순한 밥벌이로 치부한다면 일과 사랑, 일과 행복은 하나가 될 수 없습니다.
인생의 의미를 진지하게 고민하고 땀 흘리는 서로의 얼굴에서 참사랑의 아름다움을 가꾸어 나가시길 바랍니다.

4. 생활의 계율 – 일상의 작은 마음씀과 몸가짐을 소중히 해야 합니다.

사 는 일과 사랑하는 일은 구체적이고 작은 실천 속에서 이루어집니다. 한 알의 씨알 속에 우주가 담겨 있다는 의미는 곧 일상의 작은 실천을 소중히 할 때 전 인생이 값진 열매를 맺을 수 있다는 말입니다. 사람은 익숙해지면 일상의 마음가짐을 소홀히 합니다. 그러기에 늘 언행을 진솔하고 품위있게 가꾸어야 합니다.
진지하고 따뜻한 마음으로 눈과 귀는 늘 열려 있어야 하며, 늘 겸허한 마음으로 몸을 낮출 때 서로가 귀한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법구경에서는 ‘부드러운 말 한마디 미묘한 향이이며, 성 안내는 그 얼굴이 최고의 공경이다’라고 하였습니다.

5. 與樂 – 사람과 자연, 모두와 더불어 함께 사는 삶이 행복합니다.

이 세상은 만남으로 이루어지는 조화와 공존의 세계입니다. 이 세상은 더불어 함께 사는 공동체입니다. 그러기에 자연을 사랑하고 우리 이웃을 사랑해야 합니다. 자기중심적인 사랑과 행복은 고립을 가져오고 급기야 나와 이웃 모두를 불행하게 합니다. 항상 양가 부모와 친척 친구를 부드럽고 환한 얼굴로 사랑하십시오. 참사랑의 메아리가 퍼져나갈 것입니다.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운’ 감성을 두 사람은 키워나가길 바랍니다.

6. 문화 – 아름다움을 가꾸는 일, 생활속의 예술입니다.

옛날 중국의 ‘운’이라는 여인은 해질 무렵 연꽃이 봉오리를 접으려 할 때, 그 연꽃속에 차잎을 넣고 다음 날 연꽃이 피어나면, 연꽃향기 베인 차를 내어 남편과 함께 차를 마셨습니다.
힘 들고 여유가 없다할지라도, 집안을 가꾸고 대화하고 여가를 즐기는 생활의 멋을 가꾸어 갈 때 인생은 더욱 풍요롭습니다. 아무리 바쁠지라도 한 생각만 깊게 가지고 한 걸음만 부지런하면 얼마든지 소박하고 아름다운 문화를 일구어낼 수 있습니다
생활 속에서 멋을 곁들이는 문화인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농촌과 도시의 차이, 활력소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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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용자 삽입 이미지 최근 일본과 중국은 우리나라 역사와 관련하여 여러가지 침해성 주장들을 하고 있다. 일본은 독도가 자기네 땅이라고 우기고 종군 위안부를 강제로 시행한 증거가 없으니 사과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한다. 중국은 고구려가 자기들 변방 역사의 하나라고 주장하고 백두산 영유권을 주장하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일련의 사태들에서 공통적인 것은 무엇인가? 바로 자국의 이익을 위해 실리를 위해 문화적, 외교적, 정치적으로 조치를 취하고 있다는 것이다. 독도와 위안부 문제는 일본의 우국화 경향을 위한 의도적인 시도일 것이다. 이 문제는 역사왜곡 교과서 승인 문제와도 연결된다. 경제부흥을 이룬 일본이 군사부흥에까지 도전하기 위해서 자국 국민들을 각성시키려는 목적하에 이러한 일들을 벌이고 있다는 것이다.

중국이 고구려 역사를 편입시키려는 것과 백두산 영유권을 주장하는 것의 의도는 좀 더 실제적인 목적이 있을 것이다. 중국은 여러 민족이 연합되어 이루어진 국가이다. 주로 한(漢)족이 대부분이지만 50여개 소수 민족이 더 국가를 구성하고 있다. 조선족도 그 중 하나인데 고구려가 중국의 역사이니 조선족도 결국 중국의 민족이라는 것을 주장하여 소수민족의 이탈을 방지하려고 하는 것이다. 백두산 문제는 간도 문제와 연관된다. 조선과 청 사이에 미해결로 남아있다가 일제시대에 일본에 의해 강제로 간도 지방을 중국쪽에 넘겨주었다. 백두산 영유권을 주장함으로써 이 후 다시 제기될 지도 모르는 간도 문제를 미연에 방지하고자 하는 것이다.

물론 인간도 국가도 자기의 이익을 위해 행동하기 마련이다. 일본도 중국도 그 본성에 충실한 것이다. 국제사회는 힘에 의해 큰 영향을 받고 있다. 경제, 군사, 문화 등 어느 분야에 힘이 있으면 그만큼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고 이득을 보게 된다.

그렇다면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은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우리나라 국민은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당하고만 있을 수는 없지 않는가? 우리나라 역사 교육도 좀 더 호전적인 방향으로 바꿀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는 백의민족으로 평화를 사랑하고 외세의 무수한 침략을 방어했다고 교과서에서는 가르친다. 그러나 외세가 왜 그리도 우리나라를 침략해 왔던가? 우리나라가 강한 힘을 가지고 있었다면 과연 이기지도 못할 싸움을 적들이 걸어왔겠는가?

침략을 당했고, 치욕도 당했다. 심지어는 나라를 구한 영웅을 간신배의 모함에 넘어가 옥에 가두는 어처구니 없는 일도 자행했다. 중립외교를 주장하는 왕을 내몰고 사대주의를 굳건히 지키기도 했다. 외세의 침략에 굳건히 맞서고 견딘게 아니지 않은가? 우 리는 이러한 과거의 역사로 부터 배워야 할 것이다. 나와 우리와 국가가 힘이 없으면 우리의 권리를 나라를 빼앗기고 이권을 빼앗긴다는 것을.  문화적으로, 경제적으로, 군사적으로 우리는 힘을 길러나가야 한다. 새로운 정보 시대에 우리는 예전 과거 어느 때보다도 세계적으로 주도권을 쥘 수 있는 위치에 가까이 있는 것은 아닐까? 오히려 일본과 중국의 태도와 정신은 본받고 우리도 힘을 길러야 할 것이다.

연금술사와 자아의 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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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제껏 내가 같은 책을 두 번 이상 읽은 책은 삼국지가 유일했다. 10권짜리 삼국지 소설은 이문열씨가 옮긴 것 말고도 다른 분이 옮긴 것까지 해서 5~6번은 읽은 것 같다. 그러나 오늘 연금술사를 다시 다 읽게 됨으로써 목록에 하나가 더 추가되었다.( 조금 어렵거나 심오한 내용의 책은 몇 번씩은 읽어야 된다고 평소에 느끼기는 했으나 그것을 참 실현하기는 어려운 것 같다.^^;)

집 사람을 통해 파울로 코엘료의 ‘연금술사’를 우연히 읽게 되었고, 그 후에 다시  코엘료의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를 읽었다.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를 읽으면서 자연스럽게 ‘연금술사’를 다시 한 번 더 읽어봐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오늘에서야 그 결심을 완전히 실현하게 되었다.

산티아고는 양치기 소년이다. 그러다가 문득 보물이 숨겨져 있는 장소에 대한 꿈을 2번 꾸게 된다. 그 꿈에 대해 호기심을 가지고 집시에게 묻기도 하고, 우연히 공원에서 한 노인을 만나고 그 계기로 자신의 꿈에 도전을 시작하게 된다. 물론 그 도전을 시작하기 전에 많은 고민과 망설임을 겪게 되나 노인의 도움과 자기 자신의 깨달음으로 인해 용기를 가지고 시작을 한다.

그러나 첫 도전부터 험난한 역경에 부딪히게 되고, 그 역경을 자신의 힘으로 극복해 나가면서 산티아고는 점점 더 확신을 갖게 되고 계속 꿈을 찾아서 도전한다. 보물이 있는 장소인 이집트에 가기 위해 사막을 건너게 되고 한 오아시스 마을에서 운명의 여자와 연금술사를 만나게 된다. 그 이후에도 여러 역경을 겪게 되고 점점 산티아고는 만물의 정기와 가까워 진다.

드디어 피라미드에 도착하여 보물을 찾으려고 하지만 그 장소에 보물은 없었다. 하지만 이러한 모든 과정을 거치면서 산티아고는 진정한 보물과 꿈에 대하여 깨닫게 된다. 그리고 세상에서 무엇보다도 소중한 자아에 대해서도 알게 된다.

이 책을 읽고 나도 과연 산티아고처럼 나의 꿈을 실현시킬 수 있을지 생각해 보았다. 도전에는 항상 위험과 기회비용이 따르기 마련이다. 그 위험을 감수하면서도 꿈을 실현시킬 수 있는 것은 용기와 믿음과 확신이다. 용기…..
참 쉽고도 어려운 말이다. 나는 과연 일상생활에서 얼마나 용기있게 행동했던가?….

연 금술사라는 책은 한편의 동화와 같았다. 동화는 세상의 가치있는 진리를 비유와 상징을 통해 단순하게 나타내 준다. 연금술사도 마찬가지다. 자아의 신화를 실현하는 것에 대한 진리를 비유를 통해 때로는 은근히 때로는 직설적으로 깔끔하게 그리고 단순하게 던져준다. 읽고 나면 머리 속에 조금 더 확신이 생기는 느낌이다. 물론 그 느낌을 용기로 행동으로 옮겨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오늘 읽으면서 기억나는 구절을 적어본다.

“고통 그 자체보다 고통에 대한 두려움이 더 나쁜거다. 꿈을 이루지 못하게 만드는 것은 오직 하나, 실패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일세.”

모든 금속을 금으로 만든다는 연금술….과연 어떤 것이 연금술일까? 궁금하신 분은 읽어보세요~ㅎㅎ

뒤쳐진다는 느낌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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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살아오면서 항상 발전하려고 애써왔다.

뭐든 열심히 배우려 하고 새로운 것에 대해 흥미와 호기심을 가지고 도전했다.

한 몇일을 의미없이 게임만 하거나 아무일 하지 않고 보내고 나면 뭔가를 하고 싶은 의욕에 견디기 힘들 정도였다.

대부분의 사람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무엇인가를 행하고 그럼으로써 자신의 존재 가치를 깨닫고 보람을 느끼고, 그런 느낌까지는 아니더라도 하루하루 크게 후회없이 보낸다.

그러나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해야하고, 자유를 억압당하고, 하루하루를 무의미하게 보내고…

그런 느낌….

이제 어느 정도 적응이 되었지만, 자아실현 욕구와 자존심이 강한 나로써는

무언가를 하지 않고 시간을 허비한다는게 정말 아깝다.

그리고 내가 그렇게 허비하는 시간 동안에 주변에서는 나를 앞질러 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볼 때마다 아쉽고 화가날 뿐이다.

물론 주어진 환경을 개선해 나가고, 다른 방향으로 생각하고 활용하는 것은 자신의 의지에 달렸다.

같은 환경이라도 생각하기에 따라 얼마든지 긍정적으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막상, 한 번 나태의 늪에 빠지고 나니 헤어나기가 여간 쉽지가 않다.

길게 본 인생의 여정 속에서 이 나태의 시간들이, 이후의 인생에 큰 디딤돌이 될 수 있게 해야겠다.

다시 앞을 향하여! 긍정적인 생각과 행동으로!